어청도 여행
바다 먼 곳, 푸른 물결 너머로 아스라히 떠 있는 섬 어청도(於青島)로 1박 2일의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그 이름처럼 물이 맑아 거울 같고 산빛이 푸르러 가슴까지 맑아지는 듯한 섬이었습니다.
군산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배에 올라 타닥거리는 엔진 소리에 몸을 실은 지 약 2시간이 지나자, 아득하던 수평선 끝에서 어청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C자 모양으로 육지를 향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포구는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게 항구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푸른 파도와 100년의 빛, 어청도 등대
선착장에 발을 내딛자마자 느껴진 것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섬마을의 공기였습니다. 어청도는 서해 최서단 영해기선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여, 섬 한쪽에는 해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감이 살짝 감돌면서도 한편으로는 섬 전체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느 흔한 관광지처럼 시끄러운 상가나 호객 행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정겨운 포구의 풍경과 나지막한 지붕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하루 7만 원 남짓한 정겨운 민박집에 짐을 풀고, 마을 식당에서 싱싱한 서해 해산물과 구수한 반찬이 가득 차려진 12,000원짜리 백반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어청도의 상징이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어청도 등대로 향했습니다.
마을에서 등대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능선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좌우로 펼쳐진 억새와 푸른 소나무 사이를 걸으며 바다를 조망하는 기분은 섬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나 언덕 모퉁이를 돌아서자, 마침내 눈앞에 눈부시게 하얀 등대가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1912년에 불을 밝힌 어청도 등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해 남부 해상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유산입니다. 가까이서 본 등대는 조형미가 무척 뛰어났습니다. 붉은색 기와지붕을 얹은 흰색 콘크리트 타워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등대 상단의 조명 장치는 과거의 기술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등대 앞 절벽에 서서 탁 트인 만경창파를 바라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와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흰 파도와 아득한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조금씩 물들어가는 노을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어청도 등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언어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장엄했습니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등대의 불빛이 찰나의 순간 불을 밝히기 시작할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시대를 넘어 무수한 항해사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그 빛의 온기가 수평선 너머로 퍼져나가는 듯했습니다.
저녁에는 포구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주민들이 그날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와 매운탕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어청도의 밤하늘은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별들의 연회가 펼쳐졌습니다.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흐르는 밤하늘 아래, 등대의 불빛이 정기적으로 바다를 비추는 모습을 보며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학교, 그리고 백년 향나무의 울림
다음 날 아침, 포구에 감도는 잔잔한 물안개와 해국 향기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 산책 겸 찾아간 곳은 마을 중앙에 자리한 어청도초등학교였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정적만이 감도는 폐교가 되었지만, 한때는 이 작고 아름다운 섬의 미래들이 모여 꿈을 키우던 배움터였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거대한 향나무였습니다. 수령이 족히 백 년은 넘어 보이는 이 향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어청도의 산역사이자 주민들의 추억이 서린 수호목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향나무 밑에 섰습니다. 비바람과 모진 해풍을 견뎌낸 줄기는 거칠고 비틀려 있었지만, 그 가지와 잎은 여전히 생생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만들어낸 거대한 그늘 아래 서니, 마치 거대한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습니다. 학교는 비록 문을 닫았지만, 이 향나무만큼은 여전히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졸업생들의 어린 시절과 섬의 역사를 기억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향나무 옆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뭇잎이 서걱거리는 소리 사이로 마치 수십 년 전 운동장을 뛰어놀던 아이들의 함성과 선생님의 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문을 닫은 교사와 낡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 그리고 그 모든 세월을 묵묵히 지켜봐 온 향나무를 보며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었습니다.
점심으로는 다시 정갈한 12,000원 백반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뒤, 마을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나이 든 주민들과 해군 장병들에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어청도 봉수대와 돋봉산 산책로를 올라 섬 전체의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습니다. 포구를 둘러싼 야산과 하얀 등대, 해군기지와 아담한 마을,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그 자체였습니다.
배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청도는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는 관광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100년 동안 바다를 비춰온 등대의 담담한 빛, 폐교된 초등학교 마당에서 세월을 견뎌낸 향나무, 그리고 섬을 지키는 묵묵한 온기가 전해주는 고요한 울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뭍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 멀어져 가는 어청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세파에 지친 마음을 다스리고 참된 휴식이 필요할 때, 수평선 너머 푸른 거울 같던 그 섬과 등대의 불빛, 그리고 백년 향나무의 그늘이 언제나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짧았던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어청도가 남겨준 푸른 잔상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깊게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주의할 부분
배에서 내려서 등대까지는 좀 가야합니다. 걸어서 가기에도 충분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 좀 더 편리하겠지요? 다만 어청도페리는 자동차를 3대 정도 싣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2대는 섬 거주민들이 우선시되고요 나머지 한 대만 관광객들이 탑재할수 있어서 자동차는 가급적 군산항에 두고 가시기를 권합니다.
어청도에 내려서 등대까지 가는 자동차를 태워주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저도 타보지는 않았고 말만 들었지요) 그런데 이 자동차 탑승비가 생각보다 좀 비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걸어서 가시기를 권합니다. 얼마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