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백제의 왕성에 올르다
공주에 가면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으로 공산성이 빠지지 않습니다. 백제가 한강 유역을 잃은 뒤 475년 공주로 수도를 옮겼고, 이곳에서 538년 부여로 다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약 60여 년 동안 웅진시대를 보냈습니다. 공산성은 당시 왕궁을 보호하던 중요한 성이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공산성을 직접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인터넷에서 흔히 소개하는 것처럼 ‘백제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라는 느낌만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좋았던 부분도 있었고,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직접 올라가 보니 공주 시내가 정말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평일인데도 어려운 주차
공산성에 도착하면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평일이라 주차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에 차량이 꽤 많았습니다. 빈자리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주차료는 무료였지만, 평일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상당히 붐빌 것 같았습니다. 여행지에서 주차 문제는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큽니다. 차를 세우는 것부터 시간이 걸리면 관광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금 지치게 됩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입구로 향했습니다. 성인 입장료는 3,000원입니다. 3,000원이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실제로 공산성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 안으로 들어가 성벽 위에 올라가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성벽에 올라가니 공주가 한눈에
공산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사적인 건축물보다 전망이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공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과 도로가 아래로 펼쳐지고 금강도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성 아래에서 볼 때는 그저 오래된 성곽처럼 보였는데, 직접 성벽 위에 올라와 주변을 바라보니 이곳에 왜 성을 만들었는지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필 수 있고 금강을 끼고 있어 방어에도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아, 그래서 여기가 왕성이었구나.’ 공산성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백제시대의 왕궁과 건물이 지금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의 위치와 지형만큼은 지금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벽을 걷다 보면 금강과 공주 시내가 계속 시야에 들어옵니다.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풍경은 충분히 볼 만합니다.
現공산성은 백제시대가 아닌 조선시대 것
성벽을 걷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성벽이 백제 사람들이 쌓았던 바로 그 성벽일까?’ 알아보니 이야기가 조금 복잡했습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성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했습니다. 처음에는 토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석성으로 개축됐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곽의 모습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공산성에 올라와서 보는 성벽을 모두 백제시대의 원형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습니다.
저는 백제시대 왕성이었던 곳을 직접 걸어본다는 기대를 하고 갔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는 성곽 상당 부분은 후대에 변화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공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제 이후에도 이곳이 계속 중요한 장소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공산성은 활용됐고, 조선시대에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내려온 인조가 이곳에 머물렀던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성은 ‘백제시대 유적 하나’라기보다는 백제에서 조선까지 여러 시대가 겹쳐 있는 공간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유
그렇다면 이런 공산성이 언제부터 세계유산이었을까요? 공산성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공산성 하나가 단독으로 등재된 것이 아닙니다. 공산성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부소산성·관북리 유적·정림사지·능산리 고분군·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미륵사지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라는 하나의 연속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총 8개 유적이 하나의 세계유산을 구성합니다. 당시 뉴스에서도 상당히 크게 다뤄졌습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등재가 결정됐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12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이 크게 보도됐습니다. 바로 전해인 2014년 남한산성이 11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이어진 일이었습니다. 등재 전에도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2015년 5월에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즉 ICOMOS가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약 두 달 뒤인 7월 4일 실제 등재가 결정됐습니다. 당시 국내 보도에서는 백제의 건축기술과 예술, 불교문화의 발전과 확산, 그리고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와의 문화 교류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로 소개했습니다. 유네스코가 중요하게 본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세계유산이 된 것이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공주·부여·익산에 남아 있는 유적들이 백제 후기의 수도와 관련된 유산이며, 당시 백제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건축기술, 불교, 예술과 문화가 발전하고 전파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산성만 따로 놓고 볼 때보다 공주와 부여, 익산을 하나로 연결해서 봐야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의미가 더 잘 보입니다. 공주에서는 웅진시대의 왕성과 왕릉을 볼 수 있고, 부여에서는 사비시대의 왕궁과 사찰, 성곽과 왕릉을 볼 수 있습니다. 익산에서는 왕궁리와 미륵사지 등을 통해 백제 문화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들을 개별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백제 후기의 수도와 문화적 발전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 공간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무령왕 동상, ‘저분이 뭐 했지?’
공산성 안을 걷다가 무령왕 동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 동상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분이 뭐 했지?’ 무령왕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백제의 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바로 설명하라고 하면 쉽지 않았습니다. 찾아보니 무령왕은 백제 제25대 왕으로 501년부터 523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웅진시대 후반 백제를 이끌면서 왕권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회복하는 데 힘썼으며, 중국 양나라와의 외교관계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무령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무령왕릉입니다.
무령왕릉 하나가 특별한 이유
공주 송산리에는 백제 왕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여러 고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백제 왕의 무덤이라고 해서 그 주인이 누구인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정확한 피장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령왕릉이 특별한 이유는 1971년 발굴 당시 지석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지석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이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이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래서 무령왕릉은 백제 왕릉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유적입니다. 1,5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무덤과 왕의 이름을 연결해주는 직접적인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공산성에서 무령왕 동상을 보고 ‘저분이 뭐 했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령왕릉까지 찾아보게 만든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삼국시대 역사의 특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500년 전의 역사는 현대처럼 모든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헌과 유물,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서로 맞춰가며 당시의 모습을 복원합니다.
어떤 것은 상당히 확실하게 확인되지만, 어떤 것은 연구와 추정을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령왕릉처럼 결정적인 자료가 발견된 경우가 오히려 특별한 것입니다.
세계유산이 모두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번 공산성 방문을 통해 조금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산성은 분명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도 백제의 역사와 문화,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유산이라는 타이틀과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솔직한 여행 후기를 쓰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가치는 개인이 1~2시간 현장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백제의 건축기술과 문화교류를 이해하려면 공산성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부여와 익산의 유적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반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성벽을 걸어보고, 전망을 보고, 몇몇 건축물과 유적을 둘러보면서 판단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그 과정에서 공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산성을 다녀와서
공산성은 생각보다 주차가 쉽지 않았습니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붐볐고, 입장료 3,000원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성벽에 올라가서는 공주 시내와 금강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았습니다. 반면 백제의 왕성이라는 기대를 갖고 갔던 사람에게는 현재 성곽이 백제시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지금의 공산성에는 백제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공산성을 걷다가 만난 무령왕 동상을 통해 무령왕릉까지 찾아보게 됐습니다.
백제 왕들의 무덤은 여러 곳에 남아 있지만 정확한 주인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무령왕릉처럼 피장자가 확실하게 밝혀진 경우가 특별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공산성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알고 나니 이곳을 보는 관점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공산성 하나만 놓고 보면 ‘오래된 성벽’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주·부여·익산에 흩어진 8개 유적을 하나로 연결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웅진과 사비라는 백제의 수도를 따라가면서 백제가 어떻게 도시를 만들었고, 어떤 건축기술을 사용했으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어떻게 문화를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유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 개인적인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공산성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1,500년 전 백제의 흔적보다 성벽 위에서 바라본 지금의 공주였습니다. 금강을 바라보고 공주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백제 사람들도 이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 저에게는 그것이 공산성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오히려 이런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1,500년 전 이곳을 다스렸던 백제 왕들은 어디에 묻혀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다가 무령왕릉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됐습니다.
어쩌면 공산성의 진짜 재미는 성벽을 한 바퀴 걷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긴 작은 궁금증 하나가 다른 백제 유적까지 이어지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